개인이야기/나

웹이라는 집

EXKI 2026. 1. 17. 00:14

1. ANSI 코드와 파란 화면 사이

나는 PC통신 시절부터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에는 ‘대문’이라는 페이지를 ANSI 코드로 만드는 방식이 있었는데,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만 구성된 화면과 달리 색상이 입혀지거나 문자가 이동하는 등, 나에게는 꽤 신비로운 방식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그걸 어떻게 익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3대 메이저였던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은 고등학생이 넘보기엔 너무 거창해 보였는지, Kitel에서 일본 가수 팬클럽 포럼을 열고 메인 페이지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알록달록 정신없는 디자인이었지만, 그때는 화면 전체의 균형을 맞추는 게 더 중요했다. 색보다 구조였다.

 

2. 마퀴 태그의 유혹

2000년,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그 시기에는 인터넷 보급과 함께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처음 웹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다음카페에서 마퀴 태그를 봤을 때였다.
글씨가 움직이고, 튀고, 바운스하는 게 신기했다.
‘태그’라는 개념이 궁금해졌고, HTML에 대해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kebi.com, lycos 등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그때는 강좌는커녕 소스 코드를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다른 사람 사이트에서 '소스 보기'를 눌러 필요한 코드를 가져오던 시대였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던 나모웹에디터는 나에게 맞지 않았고, 대신 드림위버를 주로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3. 집을 짓기 시작하다

본격적으로 웹사이트를 만든 건 casica.net이라는 도메인으로였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름은 아니고, 그냥 어감이 좋았다.
배경은 거의 흑백에 가까운 야경 이미지였고, BGM은 박정현의 〈One Summer Night 97’〉였다.
방명록과 카운터도 달았지만 방문자는 많지 않았다.
다른 사람 웹사이트에 방명록을 남기면 그 정도로만 돌아오는 수준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과, 그것이 ‘의미’를 갖는다는 건 다른 문제라는 걸.

 


어느 날 피시방에서 내 웹사이트를 열어봤다가 크게 당황한 기억이 있다.
모니터의 명암비가 낮아 내가 공들여 칠한 블랙은 맥없이 바랜 회색으로 보였다.
그 당시 나는 17인치 1024 해상도를 쓰고 있었고, 대부분은 14인치 800 해상도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웹사이트를 만들 때 내가 가장 신경쓰던 건, 모두에게 최대한 동일하게 보이게 하는 일이었다. 스크롤바 하나 생기는 것까지 신경 쓰던 나에게, ‘환경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은 꽤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두 번째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가로폭 800 고정, 센터 정렬.
이번에는 컨셉을 잡았다. 그동안 배운 포토샵 기술을 정리해 공유하는 사이트였다.
상단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형적인 그래픽을 만들고, 보라·핑크·붉은 색을 섞었다.
꽃과 자연이 섞여 있는 듯한 그 그래픽이 나에게는 아름다웠다.

가끔 “강좌 잘 봤어요” 같은 방명록이 남았다.
그러나 나는 운영이나 확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만들고 나면 또 다음 구조를 고민했다.

세 번째 사이트에서는 다시 모든 장식을 걷어냈다.
상단 블랙 바 메뉴, 하단 화이트 콘텐츠 영역.
지금 블로그와 거의 같은 구조다.
결국 나는 항상 이 형태로 돌아온다.

 

4. 좌상단의 법칙과 미대 친구

그 시절 나에게는 한 친구가 있었다. 뛰어난 실력으로 미대에 간 친구였다.
내가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각을 언어로 풀어주던 존재였다.
“사람은 화면을 볼 때 좌상단부터 본다.”
“너 디자인은 조금 막혀 있는 느낌이야. 벽에 너무 가두려고 하지 마.”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 역시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알고 느끼는 것을 모두 말로 옮기지는 못하는 사람.

 

5. 권력의 폭력성과 침묵

군대에 가기 전, 나는 강남에 있던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디자인 학원에 다녔다.
‘최고 수준’이라는 말과 달리 교육 방식은 폭력적이고 비효율적이었다.
강사는 사소한 일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고, 못하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몰아붙였다.
나에게는 “너는 좀 제대로 하네”라고 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 불쾌했다.

 

지난 20년 동안 살아오며,
나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권력이 약자를 괴롭히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아직도 한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권력과 시스템은 인간을 이끄는 도구이지, 압도하는 도구가 아니다.

 

결국 8개월 수강료를 미리 냈지만, 나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집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다가 입대했다.
아버지께는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6. 다시, 구조만 남은 자리로

돌아보면 나는 사람을 모으거나 운영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구조를 설계하고, 공간을 만들고, 다시 허무는 과정 그 자체가 좋았다.

 

 20년이 지나 다시 블로그를 만지며,

그때의 감각이 그대로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결국 나는 항상, 가장 단순한 이 형태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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