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장식보다는 구조와 기능을 먼저 보는 쪽의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화려한 옷차림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잘한 액세서리에도 관심이 없었다.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긴 했지만, 언제나 성능이 우선이었다.
방 안에는 필요한 물건만이 정해진 위치에 깔끔하게 놓여 있었고, 좋아하는 제품 또한 금속 특유의 표면이 드러나는 재질의 깔끔한 디자인 이었다. 이런 취향은 훗날 소니와 애플 제품을 선호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반면, 나의 내부 감각과 외부 표현력은 극단적으로 어긋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미술 시간은 늘 어려웠고, 중학생 때 그림을 잘 그리던 친구들을 따라 만화의 한 장면을 흉내 내어 그려봤다가 놀림만 받았던 기억도 있다. 내가 인지하고 느끼는 이미지와, 손을 통해 구현되는 결과물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표현'은 나에게 늘 어려운 과제였다.
단 하나, 비교적 잘했던 영역이 있다면 포스터나 제도처럼 전체의 균형과 구조가 중요한 작업이었다. 창의적인 표현력은 부족했지만, 배치와 정렬, 비율과 흐름을 다루는 편집적 작업에는 어느 정도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20대 중반쯤, 아는 동생이 자신의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한 번 봐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웹디자인을 공부하겠다고 한동안 그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긴 했지만, 정식으로 디자인을 배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봐도 문제점이 명확하게 보였다. 폰트 구성, 전체 균형, 색상 사용, 여백 처리까지 거의 모든 요소가 어색했다.
‘대한민국에서 시각디자인을 4년이나 배운 사람이 이 정도라니.’
학교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스쳤던 기억이 있다.
웹디자인을 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화려함이 아닌, 어떤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인식되는 페이지 레이아웃이었다. 당시에는 ‘반응형’ 웹사이트라는 개념도 없었고, 심지어 모바일 페이지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사용자마다 제각각인 브라우저와 해상도라는 파편화된 환경 속에서도, 내가 설계한 디자인이 무너지지 않도록 통일된 기준을 세우는 데 집착했다. 그 과정에서 폰트, 여백, 비율의 정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거쳤고, 그래서 동생의 프레젠테이션 문제점 역시 한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그 기간 동안,
아름다움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콘텐츠의 질서를 구축하는 ‘설계’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그때 쌓아두었던 감각은 이후에도 계속 쓰였다.
사회에 나와서 생각보다 많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게 되었는데,
레이아웃을 잡고 정보의 순서를 정리하며,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거의 본능처럼 익숙했다.
웹디자인에 쏟았던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나를 조금 가볍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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